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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1987, 6.10 민주 항쟁의 시작

by 자엄 2023.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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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하려는 자와 알리려는 자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더라> 희대의 망언의 주인공이자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 박처원(김윤석)은 어릴 적 가족처럼 거둔 머슴이 죽창의 인민재판을 벌여 가족이 몰살당하고 월남한 철저한 반공주의자입니다. 완장 차고 광기에 휩싸인 자한테 가정을 파괴당한 사람이,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반대편에서 계급장을 차서는 다른 무고한 이들과 그 가정을 파괴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과격한 성향을 보이는 동시에 상당히 지능적이고 사이코스러운 성격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는 중심적 인물입니다. 박처원을 중심으로 위로는 대통령 최측근 국가안전기획부장 장세동(문성근), 기회주의자 소인배 치안본부장 강민창(우현)이 있고, 아래로는 공안경찰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반장 조한경(박휘순)이 있는데 조한경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고문에 가담한 공안경찰 중 하나로 윗선의 꼬리 자르기로 인해 책임을 뒤집어쓰고 구속되면서 박처원과 갈등하게 됩니다.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 최환(하정우)은 죽은 박종철의 화장 동의 서류에 도장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서류를 살피다가 수상히 여겨 도장 대신 시신보존명령서를 발부함으로써 박처원의 은폐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관련자료를 동아일보 윤상삼(이희준) 기자에게 전달해 줍니다. 한편, 해직기자 이부영(김의성)과 고문에 가담한 공안경찰 조한경이 수감되어 있는 영등포교도소의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교도관이지만 실은 이부영과 민주화운동가 김정남(설경구)을 연결하는 '비둘기'입니다. 박종철의 죽음이 지독한 고문에 의한 치사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김정남에게 알리기 위해 조카 이연희(김태리)에게 위험한 심부름을 시키게 되고, 이연희는 삼촌이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며 툴툴거리는 등 시위에 소극적이었지만 이한열(강동원)과의 우연한 만남과 사건을 계기로 마지막에는 버스에 올라가 같이 주먹을 쥐며 시위를 하게 됩니다.

 

1987 줄거리

1987년 1월 14일, 구급차가 남영역을 스치듯이 빠른 속도로 달립니다. 구급차의 목적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이었고 대공분실 안에서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한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여진구)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운동권 선배의 행방을 캐묻기 위해 박종철을 연행한 공안경찰이 고문을 가한 끝에 박종철이 쓰러지자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결국 사망했습니다. 박처원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보고가 들어가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급히 시신을 화장하려고 합니다.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인 최환은 화장 동의서에 도장을 못 찍겠다고 하자 온갖 라인을 통해 압박을 넣는 공안당국의 태도에 진노하면서 시신보존명령서를 발부해 버린 다음 후배를 통해 중앙일보에 정보를 흘려 기사를 내는 데 성공합니다. 중앙일보의 기사로 인해 사회에 큰 파문이 일자, 안기부와 치안본부에선 이 일로 자기네들의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걸 예상하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고 치안본부장 강민창이 어쩌다 죽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처원이 준 서류를 보며 읊으려다가 말을 잇지 못하자, 옆에 있던 박처원이 직접 "거 학생이 겁이 잔뜩 질려가지고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어?... 쓰러졌답니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박종철의 부검이 실시되었지만 부검사실과는 다르게 쇼크사로 발표되고 박처원의 권력으로 인해 검찰청을 퇴직하게 된 최환은 관련자료를 동아일보 윤상삼(이희준) 기자에게 흘려 '물고문으로 사망'이라는 기사가 나가게 됩니다. 결국 윗선에서는 꼬리 자르기를 위해 박처원의 부하인 고문에 가담한 공안경찰 조한경과 강진규를 교도소에 구속시킵니다. 교도소에 구속된 조한경과 강진규, 박처원 등의 대화록을 전달받은 해직기자 이부영은 그 사실을 정리한 후 교도관 한병용을 통해 김정남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병용은 박처원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되고, 결국 한병용을 대신하여 조카 이연희가 사실을 김정남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이후, 김정남은 정의구현사제단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1987년 5월 18일 김승훈 신부는 기자들 앞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게 됩니다.

 

이후 박처원과 사건 참여자들은 모두 구치소에 수감되고 연희는 엄마와의 통화로 한병용이 남영동에서 풀려남을 알게 됩니다. 얼마뒤, 연희는 신문을 통해 일전에 우연히 만난 그 잘생긴 남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죽어가는 사진을 보게 됩니다. 큰 충격을 받은 연희는 신촌을 지나 시청 광장으로 달려가는데 그 길 가운데에는 회사원들, 평범한 주부들, 택시기사와 버스기사 등 수많은 시민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 시위 구호를 외치며 1987년 6.10 민주 항쟁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6.10 민주 항쟁의 시작

영화 1987은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전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6.10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신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대다수 실존인물의 실명으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제작되었습니다.

 

영화 중 연희는 삼촌이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며 툴툴거리게 되는데, 실제 불의에 맞서고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을 시작으로 하나, 둘,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함으로써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6.10 민주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헌법과 정권의 개혁안을 발표하게 만든 사건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 9차 개정안이 지금까지도 1987년 체제라고 표현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정치, 법률 운영에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잔인하고 억울하고 말도 안 되는 과거지만 바뀐 현재를 지키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꼭 봐야 하고 기억해야 할 영화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현실에서 은폐하려는 자들이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우리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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