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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박하사탕, 나 다시 돌아갈래

by 자엄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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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했던 남자와 첫사랑

김영호(설경구는)는 구로공단의 야학에 다니면서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첫사랑이 건넨 박하사탕 하나를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순수한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IMF 등 비극적인 시대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점점 타락해 가면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됩니다.

 

윤순임(문소리)은 박하사탕 공장에서 일하며 김영호의 첫사랑으로 순수함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순임은 영호가 타락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결국에는 실망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까지 순수했던 시절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싶다던 영호를 그리워하며 영호에게 다시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 합니다.

 

박하사탕 줄거리

1999년, 영호는 20년 전 첫사랑이었던 윤순임과 함께 소풍 장소였던 가리봉 봉우회 야유회에 나타납니다. 동창회를 주최한 인물로 보이는 사람이 영호에게 연락이 안 됐다는 말을 계속 늘어놓고 이에 지친 듯한 영호는 괜찮다며 소리를 지르지만 이내 분위기가 싸해지고 맙니다. 이를 만회하겠다는 듯 영호는 노래 하나 한다며 나 어떡해를 부르지만, 절규에 가까운 노랫소리에 친구들은 좋지 않은 시선으로 영호를 바라보고, 이내 마이크를 빼앗깁니다. 영호는 친구들의 노래에 춤을 추고 괴성을 지르다가 어느새 철로 위에 올라섭니다. 영호는 철로에서 알지 못할 말을 외치며 소리를 지르다 열차가 다가오자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맡기고, 영화는 1999년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영호가 철로 위에 서기 사흘 전, 40살의 영호는 IMF 사태로 인해 집도 재산도 모두 잃었습니다. 절망한 영호는 어렵사리 구한 권총 한 정으로 자살하려고 했으나 총이 불발되어 자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쏘려 하지만 이 또한 실패로 끝나버립니다. 이혼한 아내에게 찾아가지만 싸늘하게 문전박대당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자신의 윤순임의 남편이라고 하면서 어떤 남자가 찾아오고 그를 따라 첫사랑이었던 윤순임을 만나러 갑니다. 그러나 순임은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영호를 알아볼 수 없었고, 순임의 남편은 영호에게 순임이 남긴 추억의 카메라를 주는데, 영호는 곧장 상가로 가서 그 카메라를 고작 단돈 4만 원에 팔아버리고 안에 있던 필름을 가로등 빛에 노출시켜 다시는 볼 수 없게 해 버리고는 끝내 오열합니다.

 

1994년, 35살의 가구점 사장 영호는 아내 홍자와 바람을 피우는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러는 자신도 가구점 직원 미스 리와 바람을 피웁니다. 미스 리와 고깃집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구면이었던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남자에게 "삶은 아름답다... 그렇죠?"라는 말을 합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날, 영호는 목욕탕에서 우연히 운동권 수배자의 지인인 운동권 학생을 발견하고 폭행과 물고문으로 수배자가 숨어 있는 곳을 알아냅니다. 이 당시 고문당한 남자가 바로 고깃집에서 만났던 그 남자이고, '삶은 아름답다'는 말은 바로 그 남자의 일기에 쓰인 글이었습니다. 영호는 동료 형사들과 함께 수배자를 잡기 위해 잠복근무차 군산에 출장을 갔는데, 첫사랑 순임이 군산에 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영호는 감상에 젖고 군산을 돌아다니던 영호는 카페 여종업원 경아를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냅니다. 허름한 옥탑방에서 경아의 품에 안긴 영호는 첫사랑 순임을 목놓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고, 다음날 아침 넋이 나간 영호는 자기가 찾던 수배자를 길가에서 보고도 못 알아보고 걷다가, 동료 형사들이 수배자를 알아보고는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연행합니다.

 

1984년, 영호는 영호는 아직 서툰 신참내기 형사였고 식당에서 일하는 홍자는 그를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영호가 선배 형사들의 과격한 모습과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폭력성에 의해 점점 변해가기 시작하고, 선배 형사들의 고문을 이어받아 고문하기 시작하고, 결국 똥이 손에 범벅이 되고 맙니다. 때마침 순임이 영호를 찾아오는데, 순임은 영호의 손을 보고 착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데, 영호는 그 '착한 손'으로 보란 듯이 옆에 있던 홍자를 성추행하며 자기 자신의 순수함을 부인하듯이 순임을 거부합니다. 순임은 그에게 실망한 듯 눈물을 흘리며 사진기를 선물하지만 영호는 순임이 기차를 타고 떠나는 순간 순임에게 사진기를 떠맡기고 결국 자신을 짝사랑해 오던 홍자를 택하게 됩니다. 1980년, 전방 보병사단 부대의 신병인 영호는 부대 전체가 긴급 출동하고, 영호를 면회 온 순임은 계엄령으로 영호를 보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됩니다. 영호는 부대가 한밤중에 광주로 도착한 직후 임무 수행 도중 누가 쐈는지도 모를 오발탄을 군화 쪽에 맞아 부대원들보다 뒤처져 혼자 남게 되었다가 광주역 주변 귀가하던 여고생을 발견합니다. 여고생에게 다른 군인들이 보기 전에 빨리 도망가라고 재촉하는데 동료 군인들이 오면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의심도 피하고 재촉도 할 겸 조준도 안 하고 소총 한두 발 정도를 쐈는데 하필이면 그 총알이 여고생을 정확히 맞춰 결국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맙니다. 영호는 현실을 부정하며 울먹이면서 "일어나.. 얼른 집에 가야지.."라고 독백하다 결국 오열합니다. 1979년, 갓 20살이 된 영호와 순임은 친구들과 함께 계곡으로 소풍을 나와 눈부신 햇살 아래서 풋풋한 대화를 나눕니다. 이곳은 바로 가리봉 봉우회 야유회 장소, 영호는 강 주변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79년 어느 날. 이렇게 영화는 마지막에 와서 다시 시작합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은 작품성은 물론이고 흥행도 성공하여 당시 수도권 관객 29만 명이 관람했습니다. 이 당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인 데다가 단관 상영관이 많던 시절의 관람 성적이었기에 상당한 흥행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로 김영호 역을 맡은 설경구는 신인상은 물론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첫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신인상과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받으면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한편 영화 자체로는 감독상, 시나리오상, 최우수작품상을 휩쓸고 칸 영화제 등 이창동 감독을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소개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박하사탕은 유명한 대사인 주인공 영호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면서 시간을 역순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수했던 한 인간이 시대에 비극에 휩쓸려 타락해 가고 후회하지만 돌이킬 수 없어 자살에 이릅니다. 전반적으로 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이 개인의 삶에 끼치는 과정으로 어느 정도는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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