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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왕의 남자, 비극적 궁중광대극

by 자엄 202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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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와 왕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은 풍자극과 줄타기가 특기인 광대들입니다. 장생은 성격이 대담하고 덥수룩한 장발, 수염에 입가의 흉터까지 더해져 거친 인상을 주는 반면, 공길은 남자인데도 가녀리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리며 동료인 장생, 대감은 물론 왕인 연산군까지 공길에게 홀릴 정도로 수려한 미청년입니다. 광대패의 꼭두가 공길을 양반들에게 성상납을 시키는 식으로 돈을 벌자 공길을 아끼는 장생은 꼭두를 죽이고 공길을 데리고 무작정 한양으로 떠납니다.

 

모든 것이 왕이 것이었던 시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인 연산군(장진영)은 조선의 대표적인 폭군입니다. 어머니 폐비 윤 씨의 죽음에 대해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며 강한 애정결핍을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또한 선대왕만을 받들고 계속 비교만 하며 자신을 옭아매려 하는 중신들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은 광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의 남자 줄거리

한양에 도착한 장생과 공길은 저잣거리에서 벌어지는 광대판에 난입하여 한양의 광대인 육갑, 칠득, 팔복을 재주로 찍어 누르고 그들과 합세해 왕과 후궁을 가지고 노는 광대극을 벌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환관 김처선에게 들켜 왕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의금부로 잡혀가게 매질을 당하던 중 장생이 '우리가 왕을 웃긴다면 모욕이 아니다'라며 왕 앞에서 광대극을 벌이게 해달라고 외칩니다. 이에 환관 김처선은 연산군의 충신으로 연산군의 무너질 대로 무너진 마음을 치유해 주고 기를 펴주며, 연산군을 압박하는 중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광대들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광대극을 벌이게 되었으나 호언장담하던 장생의 예상과 달리 왕 앞에서 펼쳐진 광대극은 긴장한 육갑, 칠득, 팔복의 실수 연발로 좌중을 싸늘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보고 있던 공길이 애드리브로 장생과 함께 합을 맞추고, 그 모습에 만족한 연산군이 파안대소를 벌인 후 저들을 궁에 두고 자신이 원할 때마다 즐길 수 있도록 하라며 명령합니다. 그러나 하루가 무섭게 신하들이 들고일어나 천한 광대들을 궁에 두려 하냐며 법도에 맞지 않고 나라를 어지럽힌다며 연산군에게 항소를 하자 연산군은 왕의 신세를 하소연하고 김처선은 광대들을 이용해 중신들의 기세를 꺾을 계책을 세웁니다. 이에 장생은 전국의 재주 있는 광대들을 모아 광대패를 만들어 뇌물을 받고 관직을 사고파는 탐관오리를 풍자하는 연극을 벌이고 연극 도중 중신들을 추궁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왕에게 직접 추궁당한 윤지상이 매관매직을 한 것을 실토하자, 분노한 연산군은 윤지상을 마구 매질한 후 윤지상을 파직시키고 전 재산을 몰수, 손가락을 잘라 조정 대신들에게 돌려보라는 명을 내립니다.

 

한편, 연산군은 공길을 불러 단 둘이 놀자고 하자, 처음에는 이전 양반집에서 당하던 일을 떠올리며 긴장했던 공길도 연산군이 순수하에 놀이를 위해 자신을 보른 것을 알자 긴장을 풀고 인형극을 보여주고 이를 보고 연산군은 순수한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몰입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공길은 연산군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연산군 역시 공길을 보낸 뒤 장녹수와 시간을 보내지만, 무엇인가 마음에 차지 않는지 자신을 유혹하는 장녹수를 밀어냅니다.

김처선은 또 한 번 계책을 세우고 장생을 불러 태후와 후궁들의 모함으로 왕후가 사약을 받아 죽는다는 내용의 경극을 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경극은 폐비 윤 씨 사건을 연상케 하면서 경극을 보는 내내 표정을 어둡게 굳히고 몰입하던 연산군은 왕후로 분장한 공길이 애절한 대사를 내뱉으며 사약을 받고 쓰러지자 옥좌에서 뛰어내려 어머니를 외치며 공길을 끌어안고, 눈이 돌아가 선왕의 후궁들을 내동댕이 친 후 칼로 찔러 죽이며, 이를 막으려는 인수대비까지 밀쳐 넘어뜨려 급사시켜 버립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의 복수를 하게 도와줬다는 명분으로 공길에게 종 4품의 벼슬을 내리고 이에 영의정 이극균과 좌의정 성준은 음모를 꾸밉니다. 장생과 연산군이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끼어들어서 다행히 공길은 죽지 않았지만, 공길을 보호하기 위해 난입한 육갑이 대신 화살을 맞고 죽게 됩니다. 공길은 육갑이 자신 대신 죽었다는 죄책감에 지쳐있는 중에 연산군이 시시덕거리며 기행을 하자 연산군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합니다. 장녹수는 왕의 총애가 공길에게 향하는 것을 시기하고 저잣거리에 나돌던 왕을 비방하는 벽서를 몰래 입수해 공길과 같은 글씨체로 위조하여 공길을 모함합니다. 이때장생이 나서서 공길과 똑같은 필체로 대자보를 적어 공길에게 향한 누명을 대신 뒤집어씁니다. 김처선이 장생을 풀어주지만 도망가지 않고 궁궐에 몰래 줄을 친 후, 연산군을 가지고 노는 줄타기 놀이를 양쪽 눈이 인두로 지져지는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

 

연산군은 마지막 연회를 열고 눈이 먼 채로도 줄타기를 완벽히 하며 타령을 늘어놓는 장생을 본 공길은 울먹이며 달려와 장생의 반대편에 서고, 장생은 눈이 먼 상태에서 공길의 소리를 듣고 서로 대화합니다. 두 사람이 다시 태어나서도 광대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며 제대로 놀아보자고 줄을 타는 순간, 연산군을 폐위하기 위한 군사들이 들이닥칩니다. 다음 생에서 광대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 둘은 그 순간 서로에게 줄을 타 달려간 후 줄의 탄성으로 뛰어오르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비극적 궁중광대극

광대들의 놀이에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난 궁중광대극 영화 왕의 남자는 입소문과 작품성을 통해서만 천만 관객을 기록한 가장 천만 영화다운 천만 영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한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동성애 소재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을 달성한 한국 영화 영사에 남을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 인해 공길 역을 맡은 이준기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제목이 왕의 남자이기 때문에 연산군과 공길 사이의 관계가 동성애로 생각할 수 있으나 공길에게 집착하는 모습은 동성애라기보단 애정결핍에 대한 보상욕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길에게 키스하는 장면 역시 연산군이 동성애자라기보단 중증 애정결핍 환자가 극심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한편, 장생이 동료이상으로 공길을 챙기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공길을 아껴주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장생과 공길 사이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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